파하드 파실 주연의 인도 말라얄람 영화, 말라얀쿤주 Malayankunju (2022, Malayalam)
지난번에 본 인도 스릴러 영화의 단순함에 실망했기에 또 다른 인도스릴러물인 말라얀쿤주는 나중에 보려고 했지만?
어라? 파하드 파실이 주인공이네!
따라서 다른 영화들을 뒤로 하고 먼저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하드 파실의 연기를 보는 맛으로만 봤을 뿐이지, 지극히 단순하고 별다른 것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는 무료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빠져드는 맛이 없는 건 아닙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입니다.
파하드 파실의 극 중 이름은 ‘아닐 쿠마르’이며 사람들끼리 부를 때는 ‘아니쿠탄’이라고 부릅니다. 동네 사람들의 티비나 라디오와 같은 전자제품을 고치며 사는 전기 수리공인데 이 직업의 특성을 영화에 잘 이용했습니다. 어둠과 전기의 만남이 영화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더 매력있게 만들어 냈습니다.
아니쿠탄은 여동생 부부를 용서하지 못한채 살아갑니다. 카스트 계급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가 돌아왔다는 것 때문에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용서했습니다.
여동생 부부는 이쁜 딸까지 낳았고 이들은 계속해서 아니쿠탄에게 미안해하며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지만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끌어내리며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아니쿠탄은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어둠이 오고 어떤 분위기가 형성되면, 왠지 돌아가신 아버지와 관련된 무언가가 또 생각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스릴러물답게 뭔가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경찰은 산사태가 날 지 모르니 대피장소로 이동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 가운데 이야기는 계속해서 무료하게 흘러갑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파하드 파실 특유의 과거에 사로잡힌 모습이 반복됩니다. 눈빛 자체가 이런 역에 잘 어울립니다. ‘트랜스’라는 영화에서 이미 증명됐던 표정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다가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며 제부가 걱정어린 얼굴로 찾아와 비가 많이 오니 대피장소로 가자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제부가 요청해서 반발심이 들었던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인지, 이를 거절했고 마침내 일은 터지고 맙니다.
…
죽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미움도 분노도 증오도… 다 소용없습니다. 그저 모든게 다 멈추고 사라질 뿐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 영화의 교훈은 그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났어도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며 내일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요.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또 산사태라는 것은 재난이기 때문에, 아니쿠탄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더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넓은 마음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영화에서도 말합니다.
‘사람은 죽기 전까지만 카스트로 나늬지
죽고나면 다 똑같은거야.’
마음에 어떤 분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것을 자꾸 떠올리는 것은 그만두고, 밝은 것을 바라보며 채워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