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힌디 영화: 토일렛: 에크 프렛 카타 (어떤 사랑 이야기, Toilet : Ek Prem Katha, Hindi, 2017)
예전에 봤을 때에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다시 보니까 평범하다. 그때는 인도영화를 막 보기 시작했던 때였고 그래서인지 이런 분위기, 이런 색감, 이런 마을의 모습, 그리고 악셰이 쿠마르라는 나이 많은 남자의 인도식 순수한 사랑 이야기 등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왔나보다.
지금은 수백편의 인도영화를 보고 난 뒤여서 ‘인도영화’라는 구분 없이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나만의 느낌으로 감상하는게 더 많아졌다. 이 때문에 ‘처음일 때’에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은 또 지금대로의 재미가 있고 이게 더 좋으니 딱히 불만은 없다.
영화는 일종의 계몽 운동과 관련이 있다. 인도는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지역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나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별자리’와 그에 따른 점술을 믿고 결혼식이나 선을 보는 날짜와 방법 또한 별자리에 따라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종교마다 ‘사제(브라만)’ 계층이 마을과 각 지역, 각 종교에서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와 그것이 만들어낸 전통과 문화, 그리고 관습이 이들의 삶과 의식 곳곳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악습이어도 말이다.
적어도 힌디 문화에서는 집 안에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불결하고 신성모독에 가까운 일인가 보다. 그래서 여자이든 남자이든 모두가 밖에 나가 일을 보는 곳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여자들은 새벽마다 여럿이 모여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수풀로 함께 걸어가 용변을 보고 집에 돌아온다.
여자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혼자 갔다가는 이때를 노린 나쁜 남자들에게 몹쓸 짓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런 참극은 인도영화에서도 가끔 등장하고 인도 뉴스에도 여전히 가십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토일렛 : 어떤 사랑 이야기’ 라는 이 영화는 집안에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을 알려주는 계몽 영화다. 영화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 줄 매개는 아무래도 영화인 것 같고 게다가 인도의 국민배우 ‘악셰이 쿠마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으니 신경은 많이 쓴 것 같다. 악셰이 쿠마르는 인도 계몽 영화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의 주연으로 많이 나온다.
악셰이 쿠마르의 나이 많은 남자의 순수한 인도식 사랑 연기도 볼만하다. 이 때문에 그때 그렇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그래서 악세이 쿠마르의 최고 영화로 여전히 토일렛을 꼽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가 출연한 다른 ‘애국’과 관련된 영화의 완성도가 너무 낮기 때문인 탓도 있다.
영화의 앞부분은 37살 노총각 케샤브와 당찬 젊음을 가진 자야의 결혼 전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힌두교 사제 집안의 아들인 케샤브는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아직 결혼하지 못한 이유는 별자리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소’와 결혼해 불운을 없애고 다음으로 왼손 엄지 손가락이 두 개인 여자를 만나야 모든게 해결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별자리 점괘를, 그의 아버지인 힌두교 사제는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따라서 여전이 이런 것을 믿고 있는 집에서는 집 안에 화장실이 설치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반면 똑같은 사제 집안이지만 악습은 악습일 뿐임을 자각하고 현대식으로 살고 있는 또 다른 집안이 있다. 그 딸은 대학까지 나왔고 사고도 현대식이지만 케샤브의 집안이 어떤 분위기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다.
총 상영시간이 약 2시간 30분 정도가 되는데 앞의 1시간 정도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은연중에 화장실과 관련된 악습의 비이성적인 면을 보여준다.
…
신혼의 달콤한 밤이 지난 바로 그 새벽 4시 15분. 누군가 자야와 케샤브가 잠들어 있는 신방의 창문을 두들긴다. 놀란 자야가 남편을 깨웠다가 창문을 연다. 창문 밖에는 자야를 데리고 같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마을 아낙들이 보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계몽적’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실존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인도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도사람들에게는 이런 영화의 존재가 필요했나보다. 악세이 쿠마르의 인기와 나름 잘만들어진 작품성도 있고 해서 영화는 볼만했다. 계몽적 성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후반부에서는 비록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기 시작했지만 전반부 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많은 인도사람들이 집안에 화장실을 만들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가난’과 결부시켜 생각한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그들의 문화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고 이제는 가난과 종교라는 두 가지 이유를 같이 생각하고 있다.
♬ 미친게 아니면 사랑에 빠진거에요.
♬ 사랑의 길은 순탄하지 않아
… 곳곳에 난관이 있어.
절대로 쉽지 않아.
사랑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음악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꽤 공을 들였다고 생각한다. 유쾌함과 잔잔함이 잘 어우러져 있고 영화 속 케샤브와 자야의 심정이 은근히 잘 드러나 있는데 가사보다는 음률에 더 잘 깃들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