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힌디 영화 / 살람 봄베이(Salaam Bombay, 1988, Hindi)
어른이 되었을 때의 삶을 그릴 수도, 꿈 꿀 수도 없는 어린아이들을 만든 사회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서커스 단장의 심부름으로 ‘가네시 판 마살라’ 세 통을 사기 위해 가까운 마을로 향해 달려가는 꼬마 ‘크리슈나’. 단장은 꼭 ‘가네시’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돈을 쥐어준다. ‘가네시’만을 생각하며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뛰고 또 뛰어 마을에 도착한 크리슈나. 또다시 그 멀고 혼자인 길을 돌아와야 했지만 도착한 곳은 흔적만 남은 또 하나의 허허벌판이다. 어찌된 일인지 서커스단은 이미 떠난 뒤였다.
다시 마을로 돌아간 꼬마는 남은 돈으로 ‘가장 가까운 역’으로 갈 수 있는 열차표를 구입한다. 그곳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봄베이’였다.
꼬마의 소원은 집에 돌아가 엄마와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애달프다. 형은 꼬마가 훔쳐가지도 않은 돈을 훔쳐갔다고 거짓말을 해서 꼬마가 엄마에게 더 큰 미움을 받게 한다. 화가 난 꼬마는 어느날 형이 수리를 위해 손님이 맡긴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와 수리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없을 때 자전거에 불을 지른다. 그 일로 엄마는 꼬마를 더 미워하고 급기야 서커스단에 버린(팔았을 가능성이 큼)다. 자전거 때문에 물어줘야 될 돈 500루피를 벌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자기 자식인데 그런 일로 자식을 버릴 수 있을까, 분명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며 아예 마음이 떠나 버렸다거나. 다시 말해 꼬마는 500루피를 벌어 집으로 돌아가도 어차피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돌아갈 곳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꼬마는 그 사실을 알만큼 자라지 못했다. 그렇기에 봄베이에서 길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살며 매음굴 주변에서 ‘차’ 심부름을 하는 일로 돈을 모으며 500루피를 모아 집으로 돌아갈 날을 그린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아이의 가장 큰 꿈이다. 그러나 그곳은 서커스단이 사라지고 난 뒤의 허허벌판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인신매매로 잡혀왔거나 꼬마와 비슷한 이유로 부모가 팔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어떤 여자아이가 매음굴에 끌려온다. 영화 ‘살람 봄베이’에 담긴 메세지는 잔잔했던 모습에서, 이제 더 강하고 거친 모습으로 표면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꼬마이지만, 어떻게든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꼬마이지만, 봄베이는 그마저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경찰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꼬마를 잡아 몇 년이고 나오지 못할지도 모를 감옥에 집어넣는다.
… 영화는 계속해서 버려지고 있거나 버려진 아이들이 어떻게 커 가는지를 보여준다. 꼬마 ‘크리슈나’의 모습도 안타깝지만, 몸을 파는 엄마와 그런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자라는 꼬마소녀 ‘만주’도 안타까왔다. 놀아줄 사람이 없어 늘 놀아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만주,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어린 꼬마소녀 만주는 결국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차이포(크리슈나, 꼬마)와 만주, 그리고 다른 거리의 아이들 곁에는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한 어른이 없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닮아갈지, 실패한 자화상들 뿐인 그곳에서 그들은 어른으로써의 자신을 그릴 수가 없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에 낀 듯한 ‘칠럼’이라는 인물은 마약에 중독되어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을 뿐이다. 게다가 봄베이라는 커다란 사회 또한 꼬마에게 기회와 따스함을 주지 않았다. 무엇이 제대로 된 어른인지, 무엇이 더 나은 내일인지, 무엇이 밝은 미래인지 전혀 그려보지 못하는 아이들로 가득한 감옥 안에 강제로 가두었을 뿐이다.
크리슈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원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차이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이 영화의 메세지 전달을 돕는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쓸쓸하다. 마약에 중독되어 죽은 ‘칠럼’의 마지막도 씁쓸하다.
‘가끔 마음이 이렇게 말해.
쥐약이나 먹어야 된다고.
그리고 영원히 잠들라고.
그럼 끝나는거야.’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칠럼이 말했던 내용이었던 듯 싶음)
시대의 한계는 분명히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지만 잘 만든 영화다. 그 모습에는 차이가 있어도 본질적인 메세지는 지금도 통용된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영화에 해당했을 터이고 따라서 평가도 그때의 그것을 따라 지금까지 왔을 것이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본다면 최대한 그때의 그 기분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88년의 인도라면 충분히 그럴만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