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힌디 영화 / 칙초어 (Chhichhore, 2019, Hindi)
Chhichhore 라는 인도영화인데 어느 포털에서 ‘칙초어’로 표기하고 있었다. 루저(Loser)의 완곡된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시작부터가 낯설었다. 인도영화 치고는 조금 드물게도 도시적 환경에 더 드물게도 부유층이 주인공이었다. 그동안 봐 왔던 이백여편의 인도영화 대부분은 가난함이나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는(인도에 가 본 적이 없으니) 시골집 같은 곳이 배경이었기에 이런 배경은 아직까지는 낯설다. 영화를 보면서도 내 눈은 집을 살피고 방 안 가구들과 장식들을 살피고 고급 병원의 모습도 살펴보고… 그랬던 것 같다.
인도영화에서 본 집들은 대부분 집 안인데도 흙바닥인 것은 기본이고 도시에 있는 집이라고 해도 괜찮게 생각되는 곳은 많이 못 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부터 중산층보다는 잘 사는, 그런 부유층의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 이야기의 시작…
대입에 실패하고 ‘루저(loser: 패배자)’가 되는게 겁이 나 결국 투신자살을 시도한 라가브라는 아들. 우리나라 수험생들도 거의 다 비슷하지 않나 싶은데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는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이 전부이고 그것이 실패한 후에 대해서는 재수해서 다시 도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런 우리나라 고3 수험생들처럼 낙방이 곧 인생 끝! 이라는 공식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살아왔던 라가브. 게다가 부모는 모두 잘 살고 주변 친구들도 모두 다 괜찮은 대학에 붙었다고 하니 더 큰 압박감을 받고 있던 것 같다.
결국 낙방 결과를 보고는 인생이 다 무너져 버린 것처럼 절망에 빠진 채 그대로 투신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다. 뇌에 충격이 심해 결과는 긍정적이지 못했지만 부모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점점 더 심해지는 뇌의 부종. 마지막 수단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수술 뿐이다.
그런 아들의 침상 옆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루저’였던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고보면 ‘루저’라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가치에 대해, 목표로 한 것을 얻지 못한 후에도 삶은 계속되었다는 것에 대해…
아울러 수많은 학생들을 절망의 절벽으로 몰아넣는 학교 시스템과 가정교육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그 내용이 괜찮다.
아무튼 ‘칙초어’는 부자상류층이 주인공 가정이었고 덕분에 환경이 좋아 애들 고민도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다시 말해 연애면 연애, 공부면 공부… 대입은 시험결과에 대한 걱정이 결국은 고민의 전부인 그런 가정이었다.
약간 적응안됐던 것이 이 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오로지 집중해야 할 것에만 집중해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난한 가정에 대입을 해도 등록금 걱정에… 이런 주변 이야기로 많이 샜을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약간 기분도 좋아지고 기운도 내고 싶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각본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정리’를 잘해서 중요한 것을 포인트로 굉장히 설득적인 대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방 안에 써 있던 문구들…
I CAN
AND
I WILL
WATCH ME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낼 것이다!
지켜봐라!)
DREAMS
Don’t
Work
Unless
YOU Do.
(꿈이라는 것은
‘너’ 자신이 움직일 때만
이루어진다.)
방 안 포스터에 써 있던 이런 문구들은 헐리우드 영화 중에 대학생들이 나오는 그들의 작은 방에서도 봤음직한 문구들이고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의 수험생들 방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음직한 것이다.
라가브가 마지막 수술을 앞둔 어느날 아버지는 아내에게였던가 친구들에게였던가 이런 말을 한다.
(벽장에 놓여 있는 술을 보면서) 저 술 보여? 아들에게 시험을 통과하면 같이 마시다고 했던 술이야. 그런데 나는 시험에 실패하면 무얼 해야 할 지 말해주지를 못했어.
우리는 이게 문제야. 항상 성공한 다음만을 준비해. 실패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아. 심지어 이야기조차 안해.
매년 대입을 보는 수험생이 100만명이고 합격하는 사람은 1만명 뿐이야. 나머지 99만명은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아. 실패한 후의 삶에 대해 아무런 준비조차, 그런게 무엇인지조차 몰라.
그래서 아이들은 시험에 실패한 것 뿐인데도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루저, 인생의 패배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아들이 공대생이 되는 것과,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 중에 원하는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아들이 돌아오기를 원하다고 말할거야.
그것 말고는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건 없어.
이 중에서 성공하지 못한 경우에 대해 심지어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영화 자체가 설정적인 느낌이 강한데다가 어른 배우들의 나이 든 분장이 알게모르게 어색함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고 해서 자연스러움보다는 인위적인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용 자체는 괜찮았고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라 마음에 든다. 이런 영화는 가끔씩 봐줘야 살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