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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adi Theru (2010) / 부패한 사회는 가난의 고리를 더 강하게 한다

인도 타밀 영화 안가디 테루 / 앙가디 테루 [시장통] (Angadi Theru, 2010, Tamil)

* 중반부터 스포일러가 시작되는 곳을 표시했으니 참고할 것

영화가 많이 우울하고 답답해서 적절한 때에 봤으면 싶다.

기분좋은 영화는 아니다.

희망은 잠깐이고 가난은 결국 모든 것을 절망으로 몰아넣을 뿐이라는 것, 그 가난은 되물림되기 쉽다는 것, 중간에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는 거의 없다. 마치 운명처럼.

주인공 ‘링구’의 친구가 그나마 나은 길을 찾아가기는 하는데 그것도 운이 많이 작용한 경우였다.

이야기는 이렇다…

1.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 허허벌판이다.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가난하다. 하루하루 일하는 일용직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의 꿈은 한결같다.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나같이 힘들게 살지 않게 하는 것’

 

어느 부모의 꿈과 다름없다.

 

마을 분위기를 살펴봐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 뿐이다.

그러나 짐작했듯이 이런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하기가 어렵다. 보고 듣는 것이 모두 그런 것이어서 환경도 좋지 않다. 주변에 공부라던가, 공부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이 없으니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없다. 순간순간 나도 여기서 벗어나야지, 열심히 해야지, 라고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은 없다. 그저 가끔씩 느껴지는 가족의 가난에 대한 우울함이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될까?

그럼에도 이 중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도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길로 들어서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는 어김없이 불행한 일이 닥쳤다.

집안의 유일한 경제적 가장인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사망하기도 한다. 이런 가정은 저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버는 누군가가 멈추게 되면 그 다음 사람이 또다시 가족 전체를 부양해야 한다.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은 학업을 멈추고 일자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 다시 가난의 고리 안에 들어가야만 계속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가난은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

 

2. 기회?

그러던 어느날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도착한다.

‘첸나이’라는 도시의 시장통 한 복판에 있는 커다란 의류 백화점 ‘센탈 무르간’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면접에 합격하면 3개월 후 센탈 무르간의 정직원이 될 수 있다며 사람들을 모은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잔뜩 모인다. 모두 12학년 정도 되는, 아직 사회가 뭔지 모르는 젊은이들이다.

능력있는 사람들보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뽑으려고 하는데 이유는 이들이 자신의 집안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하니까 그만큼 책임감이 강할 것이고 따라서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겉으로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은 ‘일도 힘들고 환경이 열악해도 도망가지 못할 사람’을 뽑는 것에 있었다.

공부를 잘했던 주인공 ‘링구’와 연예인을 좋아하며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 ‘마리무투’가 면접을 보고 가정환경(나중에 알고보니 가정형편이 좋지 않을수록 일이 힘들어도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런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집중한 듯 싶다) 때문에 합격한다.

월급은 10,000루피(한화 약 16만원), 이들이 기대한 것은 적어도 15,000루피였지만 허허벌판의 마을에서, 그리고 당장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이제 박봉의 첫 직장을 통해 돈을 모으고 아버지 대신 가족 전체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시작부터 답이 없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이니 주의할 것!

 

3. 도시에서 맞닥뜨린 ‘기회’

첫날부터 250루피를 뜯긴다. 직원복도 자기 돈으로 사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들이 맞이한 ‘기회’의 시작이었다.

식사와 숙박도 제공한다고 했지만 식사는 거지들이나 먹을 듯한 열악하고 지저분한 것들 뿐이고, 그마저도 먹는 시간이 30분 밖에 되지 않았다. 갔다오는데에만 15분은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1분만 늦어도 월급에서 1루피를 제한다고 겁을 주니 식사시간도 즐겁지가 않다. 그저 버티기 위해 무언가를 입 안에 밀어넣는 것 뿐이다.

숙소도 열악하다. 노예선을 연상시킨다. 커다란 원룸에 남녀 각각 50여명 이상은 됨직한 사람들이 얽기섥기 누워 자야 된다. 그렇게 잠이 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곧바로 백화점으로 나가 조회를 듣고 일을 시작하고, 일이 끝나면 다시 숙소로 와서 자는 것의 반복. 누가 봐도 병이 안 들 수가 없는 환경이다.

직장에서 숙박과 식사가 제공되면 좋은 점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급여가 적어도 시간이 지날 수록 어떻게든 돈은 모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영악한 백화점 사장은 일부러 돈이 없는 가정의 젊은 남녀를 뽑았다. 그들의 젊음은 숙소와 식사가 열악해도 몇 년이고 견딜 것이며, 얼마 안 되는 월급을 그들의 가족들에게 보내고 나면 이들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건강이 유지되는 동안은 백화점의 노예처럼 계속해서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영악한 백화점 사장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링구가 백화점 근처의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남자는 그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8여년간 ‘센탈 무르간’ 의류백화점에서 일했다는 그는 백화점 일 때문에 다리에 병이 생겨 오래 서 있기기 힘들어져 쫓겨났다. 쫓겨난 후에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얼마 후 이 사람은 길거리에서 힘이 다해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4. 사랑,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

‘링구’는 백화점에서 ‘카니’라는 동료여직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링구에게는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고 카니에게는 어떻게든 데려와 살고 싶은 여동생이 있었기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지만 어떤 일로 인해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가난과 환경은 이들의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희망은 잠깐이었을 뿐이고 절망은 그들이 살아있는 평생을 그들과 함께 하며 힘들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작게나마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장통’에는 남이 보기에는 비극이지만 안에서는 그래도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 그것에 집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가난한 집은 모든게 가난하다.

시작도 못한다.

기회마저 빼앗긴다.

 

이들의 고민은 하나 뿐이다.
내 가난이 자식에게는 되물릴까봐 늘 걱정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희망을 가져보는 순간이 있지만,
영화는 가난이 결국 그것들을 모두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빈자에 대한 인도의 사회문제도 카메라에 담았다.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 심지어 아이까지 낳아 길을 집 삼아 살아가는 부부도 있다.
잠깐이지만 아이를 번쩍 들어안고 웃는 모습이 비춰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들의 웃음은 가난에 기회마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직장을 그만둔 링구와 카니는 첸나이의 시장통에서 직장을 가져보려고 어떻게든 노력하지만 구직자가 너무 많다. 결국 30년인가, 몇십년을 그곳에서 노점상으로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할아버지 밑에 들어가 물건을 팔며 판매한 물건당 1루피의 보수를 받는 일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다.

하지만 잘 곳이 없어서 공구리 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다가 더 큰 비극에 빠진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래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려는 모습에 포인트를 맞추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것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의 의도가 무엇이든 다르게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모순을 느끼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앙가디 테루’는 인도영화에 처음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봤던 영화 중 한 편이다. 오랜만에 다시 보았는데 별 세개와 네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별 다섯 개로 올려놓았다. 상황이 급변하는게 너무 반복되어서 그게 조금 그랬는데…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느끼는 감정은 변함없다.

그나저나 타밀어는 왜 이렇게 시끄럽게 들리는 걸까? 굉장히 빠르고 뭔가 시끄러워 한참을 듣고 있으면 귀가 다 아플 정도다. 그러다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화면에 주변의 소음만 잡혀 있는 장면이 나오면 확 조용해진 느낌이 들어 평화스러울 정도다. 물론 약간 과장하자면 말이다.

재미(?)있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시장통에서도 자신의 기회를 찾아 돈을 버는 놈(방법이 비열하니까)이 하나 나온다. 공공화장실이어서 너도나도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곳을 깨끗하게 씻어내고는 그 앞에서 사용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일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는데 공공재로 사욕을 채워 돈을 버는 모습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방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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