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3권
3권은 역사소설이 아니라 고전문학소설 읽듯 읽어버렸다. 공화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원로원의 구시대적인 모습은 성장과 존속의 한계에 선 로마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밟고 넘어서야 할 모습처럼 보였다. 지금까지의 로마는 공화정의 모습으로도 살아남을 수는 있었지만 앞으로 로마가 더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물론,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해 로마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도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 성장하듯 공화국이라는 껍질을 완전히 벗어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게 이 3권에 자세히 나와있다. 늙은여우 보다 간교하고 수완좋은 원로원의 정치와 로마의 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힘을 눈치채기 시장한 민중들의 정치가 부딪치면서 흥미로운 정치극을 벌인다.
이 중에서도 고전소설처럼 다가왔던 부분들은 혈통과 명예, 지위, 돈 등에 길들여져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왔던 귀족들이 어느날 갑자기 껍질을 깨고 실제의 자신과 마주치게 되면서 변하는 모습들이었다.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처자와 스카우루스의 아들도 그 중 하나였다.
스카우루스는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게르만족과의 전장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에게는 전장에서의 끓어오르는 피도 없고 아버지와 같은 용기와 배짱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겁에 질려 좋지 않은 모습으로 기절하고 부하들에 의해 겨우 구출되어 나왔지만 자신의 그런 수치스러운 모습까지 포함한 상세한 보고서를 원로원과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전달자가 됨으로써, 그는 결국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고 확신했던 아버지 스카우루스의 집에서, 부서진 껍질 속의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검으로 자결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만약 그가… 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아까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던 처자, 리비아도 어떻게 보면 스카우루스의 아들과 똑같은 입장이다. 길들 여짐 속에 살아온 그녀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변했다.
껍질이라는건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익숙해지면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법이다. 원로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껍질 안에서 스스로 편안함과 위대함을 느꼈고 로마인 중의 로마인이라는 내용없는 위명에 기대어 서로들 의지하며 믿음의 공동체 마냥 로마를 이끌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게르만족과의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8만명이 넘는 로마군대가 바로 그 원로원들의 현실로마와 맞지 않은 껍질 때문에 전멸함으로써 이미 공화국의 몰락은 예고된 바였다.
마리우스는 일곱번의 집정관직을 지낼 수 있을 것인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술라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편 인 ‘풀잎관’이 기다려진다.
어차피 로마의 일인자 세 권은 모두 같은 이야기의 한 부분이지만 1권과 2권이 다르고, 3권은 또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2 권이 재미면에서는 술술 읽혔지만 로마 공화정 말기의 모습과 전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던 건 3권이었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아래는 역시 별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체크하던 본문 내용들 중 몇 개만 적었다.
– 유구르타는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로마 시가를 걸어다니며 구경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죽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그의 삶은 패배로 끝났을지언정 만족스러웠다. 그는 로마인들을 끈질 기게 괴롭혀주지 않았던가.
–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물은 말라버렸고 다시 물이 차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아라우시오 전투가 사람을 바꿔놨습니다.
– 호민관들은 이솝 우화의 토끼처럼 처음부터 달리다가 일찍 지치는 반면, 원로원의 늙은 거북이들은 느리지만 늘 한결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 그리스인은 존재하고 로마인은 행동하지. (둘다 이게 장단) – 머리가 어질해진 리비아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했다. 그녀는 곧 자신이 평생 동안 생쥐처럼 소심하게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 그는 포르투나 여신과 이어진 끈을 믿었고 여신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 반란군은 10년은 너끈히 버틸 식량이 있다는 전갈을 로마군 진영에 보내왔고, 로마군에서는 그렇다면 11년째 해에 점령하겠다는 회신을 보냈네. 루쿨루스는 포고관을 시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줌으로써 반란군들을 공포에 떨게 했지.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우리 사령관인 퀸투스 루타티우스는 테르모필라이 전투처럼 싸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네. 하지만 역사책을 떠올려보면 자네도 알 거야. 결국 레오니다스 왕을 파멸시킨 건 작은 산길 하나였다는 것을.
– 저는 게르만족들이 지금처럼 생활하는 게 그들의 보성 때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본래 살던 고향의 환경이 그렇다보니 저렇게 된 것 같습니다. (술라)
– 아들들은 그리스어와 아람어, 그의 말로는 아마도 히브리어도 배우지만, 시몬은 그애들이 라틴어도 그만큼 능통해지기 를 바라거든요. 그렇게 되면 로마에서 끝없이 일거리가 생길테니까요.
– 가이우스 마리우스 같은 사람에게 달리 어떤 도전자가 있겠습니까? 그는 경기장에서 가장 뛰어난 말인데요. 그래서 그는 자신과 싸우며 달리는 겁니다. 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나는 할 수 있고, 해내고 말 거라는 생각으로 달리지요! 하지만 그것은 오직 나에게만 진정으로 의미가 있어요.
– ‘늦게 피는 꽃’이 될 거라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원로원 의원들과 친분이나 우호관계를 맺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예컨대 스카우루스는 제쳐둬야 할 인물이었다.
– 사투르니누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질 때까지 로마를 내 수중에 넣어야 해. 그러지 앟으면 나 역시 끝장이야.’
– 사투르니누스는 정치가이지 군인이 아니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그는 권력의 속성은 알지만 무력에 대해서는 모르 오. 그러니 실행 가능한 전략을 스스로 세울 수 없지요.
– 실상은 그들이 나보다 더 부도덕한 인간들이오! 그런데도 그들이 그 사실을 깨우치게 할 길은 전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