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라고 하면 당연히 외국어라고만 생각해왔기에 어리둥절했던 순간이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후 어떤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을 원서로 읽게 되겠군요.’
… 순간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 이렇게 이해했다.
아, 한글로 쓴 책이니까 원래 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어로 번역된 책을 읽으며 비교해보고 공부해보겠다는 뜻인가보다…
라고.
…
참…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러고보니 오래전 말 실수가 생각났다.
나도모르게 뭔가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고 어느날, 그곳에서 일하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일이 생겼단다. 더 듣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ㅇㅇ가 그랬어?’ 라고 말해버렸다.
말하고 나서도 아… 실수했다… 난 왜 여전히 애들같을까… 언제나 철이 들려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동생은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지?’ 라는 생각을 했던지 잠시 조용했다가, 아니요, ㅇㅇ가 사고를 쳤어요. 라고 말해왔다.
어찌나 민망했던지.
바로 그 후의 대처도 참 부끄러웠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실수를 다른 말로 얼머부렸기 때문이다.
그 일로 나는 그 동생에게 그 사람에 대한 ‘그릇된 나만의’ 거짓 편견을 심어줬을 것이다.
그 후로 그런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실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날때마다 매번 미안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노벨상 수상작을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곧바로 제대로 이해하게 된 순간,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실수가 생각나서 적어봤다.
편견이라는게… 참… 내가 당하는건 그리 싫으면서 왜 남에게는 적용하려는 걸까? 물론 겉으로는, 그리고 행동으로도 그러지 않고 살지만 마음속까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사람의 지능이라는건, 어떤 패턴을 파악하고 인식해서 생존과 관련된 쪽으로 이용하려는게 포함될텐데 그런 면에서는 편견도 생존을 위해 패턴을 대하는 나의 대처로써 이해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 대해 하지도 않은 일로 나쁘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을때가 많다는 것에 대해 늘 주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사람만의 지난 이력을 통해 평가하는 것은 옳다고 보지만, 다른 비슷한 사람의 통계를 통해 모두에게 그것을 적용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확실히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이런 편견이 강해지면 사고의 유연함을 몽땅 빼겨버린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강의 소설, 노벨문학상, 원서로 본다… 그러면 당연히 음, 한글이니까 원서로 보는거네, 재밌다, 라고 이해하는게 맞는데 사고의 유연함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농담도 못 알아듣는 식의 그런 사람이 돼 버린 셈이다.
글이 또 주절주절 길어지니까 여기서 줄인다. 늘 생각을 유연하고 융통성있게 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만의 지난 이력으로 평가해야지 다른 비슷한 사람의 이력으로 내 맘대로 평가해서도 안된다는 것. 이 정도만 다시 되새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