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않고 계속해서 빠르게 타이핑해야 하는 직업(일)이라면 어떤 키보드를 추천할 수 있을까? 장시간 빠른 타이핑 용도에 맞는 기계식 키보드가 있을까?
1. 주의점! 프로그래머가 좋아하는 키보드와 빠르게 계속해서 타이핑해야 하는, 마치 속기사처럼 쓰는 키보드는 다르다.
오래전에 크게 착각했던 적이 있다. 프로그래머는 당연히 컴퓨터와 붙어 살기 때문에 키보드가 밥벌이의 중요 도구나 다름없고 따라서 이 사람들이 편하다고 하는 키보드가 좋은 키보드일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타이핑은 장시간 빠른, 그리고 쉬지않고 계속 타이핑하는 것과는 달랐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프로그래머의 타이핑은 따닥따닥… 강약도 있고 리듬이 있다. 일정한 포맷을 따라 움직이는게 많다. 1시간이면 1시간 내내 다다다다다다닥… 타이핑하는게 아니다. 적당한 간격이 있다. 물론 아래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말이다.
내가 말하는 장시간 빠른 타이핑은 다르다. 모니터 옆에 글이 적혀 있는 종이가 있고 이것을 계속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저장하는 타이핑을 말한다. 여기에도 리듬은 있다. 손라각에 들어가는 강약도 다르다. 그러나 그 간격이 프로그래머보다 무척 짧고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그것을 1시간 내내 친다고 생각하자.
내가 말한 좋은 키보드는 후자의 경우에 적합한 것을 말한다. 재미삼아 인간복사기라고 부르겠다. 물론 요즘에는 앱으로 글씨를 찍으면 자동으로 문자로 변환해 주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런 것들은 논외로 하자.
2. 갈축 키보드와 청축 키보드가 좋다는 것은 프로그래머에게는 가능하지만 인간복사기에게는 절대 삼가야 할 키보드다.
갈축 키보드와 청축은 중간에 살짝 걸렸다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약간의 속도가 추가된다. 적당한 리듬 안에 적당한 타이핑을 하기에는 재미도 있고 나쁘지 않다. 너무 오랜 시간만 아니라면 말이다. 생각 좀 하고 타이핑 좀 하고… 이런 식으로는 나쁘지 않다. 프로그래머에게는 때론 재미도 있고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게이머나 일반인에게도 그렇다.
그러나 인간복사기에게는 치명적이다. 걸렸다 들어가는 부분에서 아주 약간의 속도가 더해지는데 이게 누적되면서 손가락 마디에 충격이 쌓인다. 아무리 가볍게 치는 타이핑 스타일이라고 해도 이 걸림 구간에서 속도를 줄일 수 없다. 아무리 줄여도 충격은 더해진다. 처음 며칠은 손가락 마디가 저릿저릿해진 가운데 잠이 들 수 밖에 없다. 청축은 너무 시끄럽다. 1시간 내내 척척척척 소리에 시달리는데 정신병 걸린다.
3. 그나마 적축의 기계식 키보드가 낫지만 키압과 눌러지는 깊이(shallow)가 문제다.
일반 키보드를 기준으로 봤을 때 기계식 키보드는 오히려 힘이 들 수 있다. 조금 나은건 적축이다.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은 청축과 갈축을 많이 선택하는데 청축은 너무 시끄럽고 갈축은 걸렸다 들어가는 부분에서 약간의 가속이 붙어 바닥을 칠때 그만큼의 힘이 더해진다. 별것 아닌 힘이지만 빠르게 계속해서 문자를 타이핑해야한다면 잠이 들 때 손가락 마디가 저릿저릿한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일반적인 기계식 키보드에서는 적축이 낫지만 키가 눌러지는 깊이(키 트래블, 쉘로우… 불리는 이름은 다양함)가 결코 적지 않다. 그만큼 많이 눌러야 하고 그래서 손가락 움직임이 더 길어져 힘들 수 밖에 없다. 펜타그래프 방식의 키보드와 비교하면 체감상 두 배는 눌리는 느낌인데 이걸 도무지 줄일 수가 없으니 문제다. 더구나 키압도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일반 적축 키보드에 사용되는 축이 체리와 카일 같은데 적축은 45그람 위아래로 5그람 정도의 차이… 로 키압이 표시되고 있다. 흑축은 55그람인가? 5~10그람 더 무거우니 생략한다. 구름타법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건 그냥 그렇다는 소리이지 편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45도 무거운데 55는 곤욕이다.
45그람의 키압은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장시간 쉬지않고 빠르게 타이핑하는 인간복사기에게는 무겁게 다가온다. 키압과 눌러지는 깊이가 문제다.
4. 오링으로 키 쉘로우 줄이기는 가능하다.
키압을 줄일 수는 없지만 키 트래블은 줄일 수 있다. 오링이라고 하는 고무링을 키캡의 키축에 꼽는 부분에 끼우는 방법인데 아주 약간의 키 트래블을 줄일 수 있고 체감상 1/3 정도가 줄어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얇은건 두개까지 끼워도 되지만 조금 더 두꺼운걸 선택해 한개만 끼우는게 그나마 낫다. 두 개를 끼우면 이상해진다. 그러나 오링 역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키를 누르는 느낌이 불편해지고 그렇게 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바닥에 닿는 느낌도 이상하다. 하지만 손가락의 편안함을 위해서라면 끼워주는게 좋기는 하다. 오링의 두게를 잘 선택해서 한 개씩만 끼워야 한다.
5. 키스킨은 키압을 높여주는 부작용이 있다.
키스킨을 씌우면 어떨까? 이것도 주의해야 한다. 키스킨의 재질은 실리콘과 TPU 같은게 있는데 실리콘은 표면이 부드럽기보다는 뭔가 마찰력이 살짝 있어 빠른 타이핑을 할 때 굉장히 걸리적거린다. 손가락이 미끄러져야 하는데 마찰때문에 계속 걸리니 나도 모르게 그만큼 손가락을 더 들게 되고 이게 상당히 피곤하게 만든다. tpu는 플라스틱? 그런거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재질이 좋다. 플라스틱처럼 미끄러지기 때문에 마찰되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키스킨의 문제는 키와 키 사이의 고정된 연결부위에 있다. 키마다 한개씩 끼우는게 아니다보니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바다 위에 배들이 흔들리지 않게 서로 묶어놓은 쇠사슬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배가 덜 흔들리는 것처럼 키가 덜 눌린다. 같은 힘으로 덜 눌린다는 소리다. 따라서 제대로 누르려면 그만큼 힘이 더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안그래도 적축의 키압은 가벼운게 아니다. 가볍고 빠르게 계속해서 쉬지않고 타이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축의 키압이 무겁다. 보통 45그람 안팎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5그람(10그람 빠진 축을 써 봤는데 이건 너무 빠져서 오히려 힘들어진다.)만 빠지면 최고의 키압일 것 같다. 여하튼 여기에 키스킨 때문에 더해지는 압력이 더해져서 누르는 힘도 더 들어가고 많이 힘들어진다.
소리가 줄어드는건 장점이지만 불편해지는 단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 게다가 tpu 기계식 키보드 키스킨은 구하기도 힘들다.
6. 낮은 키축(로우 프로파일)의 키보드는 키 쉘로우를 줄여주지만 키압은 그대로다.
이런 단점들을 극복해 줄 수 있는게 낮은 키축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다. 체리와 카일에서 낮은 키축이 나왔고 카일의 낮은 키축이 적용된 상품은 이미 여러종류가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만인가? havit 이란 키보드가 있고 아마도 이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우리나라의 다얼유 제품이 카일의 로우 프로파일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다. 이걸 사용하게 되면 키 쉘로우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다. 펜타그래프식 기계식 키보드의 느낌이다. 조금 덧붙이자면 말이다.
덕분에 타이핑이 빨라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키보드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키캡이 pbt가 아니다. abs다. 따라서 표면에 약간의 마찰이 있고 이게 가볍고 빠르게 계속해서 쳐야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커다란 짜증이 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k940인가, kb940인가… 다른 회사에서 같은 키축이 사용되었고 pbt 키캡으로 보이는 키보드를 출시했는데 아직 이 제품은 써보지 못했다. 키캡이 네모나고 옆에옆에 서로 달라붙어 있는 형식이라 오탈같은게 일어나기 쉬워 보이는데 키캡 재질만큼은 마음에 든다.
체리에서 나온 낮은 키축의 키보드는 펀딩으로 출시하는 상품을 하나 봤던 것 같고 모 회사에서 올해 초부터 이미 해당 제품의 출시를 예고한 것도 봤는데 전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후자는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출시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스타일의 타이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위에 쓴 글들을 참고해서 원하는 키보드를 결정하는게 좋을 것 같다.
또 키보드는 직접 타이핑해 보고 사면 좋기는 한데 사무실에서 작업하는것과 판매처에서 타이핑해보는데는 차이가 있다. 판매처에서 직접 쳐 볼 때는 사실 미묘한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타이핑 하는 키보드위 위치가 실제 위치(높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키캡 재질과 연관되는데 팔꿈치 위치가 위에서 키보드 높이는 아래에서… 사용하게 되면 손가락이 위쪽에 더 떠 있는 모양이어서 키캡 재질이 무엇이든지간에 수평적으로 마찰이 일어날 일이 거의 없다. 위에서 치는 모양이라 큰 차이가 없다. 힘도 그렇게 들어가니까 정확하고 미묘한 힘의 차이도 느낄 수 없다. 일부러 앉는 모양을 취하고 키보드 위치도 실제 사용하는 책상과 똑같이 맞춰서 쭈그린 채로 타이핑을 해도 몸에 긴장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따라서 키보드 매장에서 직접 타이핑해보고 예의상 그곳에서 구입을 했을 때, 드디어 마음에 드는 키보드를 찾았다고 생각해 기분좋게 집에 돌아왔지만… 그 날 바로 알았다. 다만 이유를 몰랐을 뿐인데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7. 결론
(1) 낮은 키축(low profile)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가 그나마 키 쉘로우라도 줄여줘서 더 좋다.
(2) 하지만 카일의 낮은 키축 키보드를 쓰고 있는 지금, 키압이 너무 무겁고 키캡 재질이 abs여서 손가락이 마찰에 걸려 짜증난다.
(3) tpu 재질의 키스킨을 구입해 윗부분을 하나하나 잘랐다. 그리고 이 키보드의 키캡 위에 하나하나 붙였다. 양면테이프로 붙였다. 마찰이 사라져서 짜증나는 것이 줄었다. 그러나 키압은 너무 무겁다. 일반 키축의 적축 키보드보다 더 무겁다.
(4) 키보드 서랍을 구입해서 책상 상판 아래 붙여서 키보드를 낮춰 쓸 수 있다면 키압도 어느정도 해결되고 팔도 덜 불편해질텐데 그러기 힘든 구조여서 이대로 쓰고 있는 중이다.
(5) 가볍게 최소한으로만 움직여 타이핑하는 스타일에게는 45그람 적축은 무겁다. 35그람은 너무 가벼워서 반동도 확 줄어들고, 그래서 손가락이 더 힘들어진다. 바닥에 딱딱 하고 닿는 충격이 크다. 살살 쳐도 이모양이다. 따라서 40그람 키압이 있다면, 키압은 그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6) 낮은 키축! 40그람의 적축이나 무접점 키축! pbt 재킬 키캡! 키보드 위치를 낮춰줄 키보드 서랍!
이렇게 네 가지가 빠르게 장시간 계속 타이핑하는게 적합한 키보드라고 결론짓는다.
필자분 같은 성향이시면 무접점 키압 35g짜리나 백축을 쓰셔야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