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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아프고 난 뒤면 필요한 것이 구분된다

방 한 가득 쌓여있던 책들. 한 권 두 권 모으다보니 어느덧 벽이 책으로 덮여 있었다. 곰팡이가 나지 않을까 싶어 항상 습기제거제가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띄고 책장과 책을 놨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지만 뭔가 답답함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정리할 만한 책을 선뜻 골라낼 수 없었다. 세 번 읽은 책만 정리한 후 골라내는 식이었다.

어느날 몸이 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구나. 올해는 이것으로 넘기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한두번은 크게 앓다가 낫곤 했기 때문에 연례행사처럼 느껴졌다.

그 날은 전과 많이 달랐다. 심했다. 세상이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가야되나? 마지막까지도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틀을 앓다 깨어났다. 그리고나자 책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참 쓰잘데 없는 것들이 많구나. 이 참에 정리하자. 라는 생각으로 하나둘 정리를 시작했다.

라면박스로 몇 상자가 나왔는지 모른다. 대부분 헌책들이라 돈으로 치면 다 합쳐도 십만원이 안될 것이다. 새 책이었다면 몇 백만원이었겠지만 나름 재밌게 살았구나 싶었다.

이제 한 쪽 벽면만 책이 남았다. 의미가 있는 것들만 남았다. 저자의 사인이 있어서 나중에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 좋을 것 같은 책들과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들, 내 추억이 담긴 책들만이 남았다.

내년에 또 아파오면 이 중 또 절반은 사라질 것 같다. 그 사이에 책이 더 채워질리는 거의 없다. 요즘은 전자책과 대여를 통해 읽기 때문에 집에 책을 더 이상 쌓아두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헌책값이 더 이상 예전의 헌책이 아니라 흠있는 새책처럼 너무 비싸져 여력도 없고 사고 싶지도 않다. 또 몇 번의 병치례로 쓰잘데 없는 것의 선이 더 현실적으로 변경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두어달에 한 권은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쌓아두지는 않는다. 반드시 ‘소화’해내고 없앤다.

가령 조국의 책과 조민의 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책들이 서로 조금씩 다르면서 좋은 예를 보여준다. 조국의 책은 약간 어렵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그렇다. 그래서 훑어보고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이렇게 세 번째 읽을 때 정리해서 블로그에 필요한 것만 적고 이것저것 메모와 표시로 덮힌 책은 버린다. 누군가에게 기부하고 싶어도 책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읽을 맛 안 날게 뻔해서 그럴 수 밖에 없다.

조민의 책은 에세이로 가볍지만 내용이 알차고 생각해 볼 만하게 적혀 있어 좋다. 일기를 가끔씩은 쓰는 사람이 틀림없다. 챕터마다 담긴 내용들이 에세이를 위해 한 번에 다 적으면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 그 때 어딘가 적어두었던 것들을 다듬어 옮겨 적은 듯한 내용들이 눈에 띈다. 아버지인 조국보다 더 대중적으로 쉽게 쓰기 때문에 읽을 때 시간이 잘 간다. 나중에 아버지의 책이 나올 때면 조금 더 쉽게 쓰면 어떻겠냐고, 살짝 이야기해주었으면 싶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여러번 읽어야했다. 챕터만 보면 총 13장으로 되어 있는데 한 장을 보는데 대략 2시간 정도씩 걸렸다. 천천히 생각하며 이해하며 읽다보니 어떤 챕터는 3시간도 더 걸렸다. 게다가 그렇게 한 챕터를 읽고 나면 뭔가 내 정신의 에너지가 많이 닳아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계속 읽기 어렵다. 결국 몇 주에 걸쳐 다 읽은게 1회이고 형광펜으로 그은 내용들과 다시 한 번 정리를 위해 또 한번, 그리고나서는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아 여러번씩 읽은 후에 그리고나서 옮겨 적고 싶은 것들을 블로그에 적었다. 책 한권에 두어달의 시간이 흘러갔지만 참 멋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책은 나와의 만남을 모두 마친채 그렇게 사라졌다.

아무래도 저자 친필 사인본처럼, 어떤 선물용과 같은 의미가 있는 책이나 희귀본, 더 구할 수 없는 책들, 내 추억이 담긴 책들… 이렇게 30여권 정도만 남고 남은 책들은 언젠가 하나둘 사라질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내 추억이 담긴 나만의 책들만 빼고 나머지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들이 좋아하도록 선물로 떠나보내게 될 것이다. 추억이 담긴 나만의 책들도 마지막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아침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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