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자라는 곳 그리고 거품의 본질 / 가렛 가렛트
언제부터인가 금융쪽 관련 종사자들에게 ‘전문가’라는 말이 더 쉽게 붙여지기 시작했다. 돈을 더 잘 벌고 싶어 관련 된 정보들에 귀기울이는 일반인은 전문가라는 말에서 이성을 넘어선 신뢰를 찾게 된다. 이것은 돈에 대한 욕망을 탐욕으로, 때로는 종교의 그것과도 같은 무조건적이거나 막연한 믿음으로 변질되기도 해서 문제다.
동네의 일반 은행 등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만약 월스트리트의 금융인이라고 생각해 보자. 세계 금융정보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만 같고 세계의 모든 금융관련 정보들이 모이는 곳 같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일반인들은 그에 대해 막연한 추측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현재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된다. 전문가라는 단어의 힘은 이곳에서 종교의 그것과도 같은 힘으로 더 변질되기 쉬워진다.
금융회사에서 그가 갖는 위치와 직책에 따라 돈과 관련된 막연한 추측은 더 강해진다. 그가 내뱉는 사소한 말에도 무언가 큰 비밀이 담겨 있을거라 생각한다. 은행장이라면 뭔가 더 큰 비밀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그에게 접근해 어떻게든 그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나가게 된다. 은행장이 실제 하는 일 자체에는 돈을 버는 비밀같은 건 있지도 않고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것이 실상인데 은행 안에서는 은행장 스스로도, 그를 통해 무언가 큰 비밀을 얻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도 모두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돈이 아니라 끝없는 망상이 자라는 곳이고 그것이 월 스트리트의 모습이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금융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가진, 그야말로 전문금융인이 있다고 해 보자. 스스로도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집에서 가정일이나 하고 있는 아내가 주식시장의 동향 등을 이야기할 때면 코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행장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월스트리트가 만들어낸 허상에 갇힌 사람으로 스스로 돈이 자라는 곳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론은 어땠을까?
아내 : …나는 시장이 상승할 거라고 생각해요.
금융인 남편 : 왜지?
아내 : 대폭 하락한 다음에는 언제나 상승하지 않나요?
금융인 남편 : 여보세요 여사님, 여사님께서는 본인 일에나 신경 쓰시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제 그만 합시다.
… 그리고 그 다음날 시장은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늘 소수이며 다른 사람과 비밀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것이 월스트리트의 실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돈을 버는 구조도 재미있다. 스스로 그 소수 중 한 사람이라고 믿는 그들 역시 자신들이 얻은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게 맞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그 뿌리를 따라가다보면 자신이 산 것은 자신이 판 것이 되고 자신이 말한 ‘그들’이 알고보니 자신들이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월스트리트로 가는 망상의 통로를 지남과 동시에 돈을 버는 이들조차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이를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하나, 우리가 사는 곳 자체가 월스트리트라는 것.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망상의 통로를 통해 다시 나갈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는게 조금은 다를까…
후반부에는 전반부의 책을 쓰고 약 20년이 지난 후에 쓴 또 다른 책에 실린 글이 실려있다. 피라미드에 빗대어 신용이라는 거품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실체가 없는 신용이 만들어낸 거품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은행에 입금한 돈, 혹은 빌리는 돈들이 세계경제에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지 파악하도록 돕고 있는 내용이다. 같은 이유로 (신용) 거품이 빠졌을때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모든 것들이 폭락하고 망하게 되는 과정도 이해하게 된다.
실체가 있는 돈 1이 은행에 입금되면 은행은 이를 실체가 없는 신용 10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보낸다. 이제 이 신용이 국가간 장벽을 넘어 전세계에 거대한 경제흐름을 만든다. 그러나 어디선가 삐딱하여 9라는 있지도 않은 실체를 메우기 위한 과정이 시작되면 신용이라는 거품들이 순식간에 터져나가기 시작하고 지구촌 어느 한 곳에서 벌어진 이 현상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결국 전 세계에 형성된 신용거품들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은행이 망하는 등 직접적으로 우리 피부에까지 와 닿게 된다. 내가 입금한 1이 0이 되어 돌아오는 현상으로도 이어진다.
돈이 자라는 곳 그리고 거품의 본질이라는 이 책은 얇고 활자도 커서 쉽게 읽히는데 딱딱한 이론서처럼 적혀 있지 않고 뭐랄까, 마치 그래픽노블을 글로 읽는 것처럼 장면들이 머리에 그려지면서 읽히게 되는 맛이 있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것을 밝히는 책이 아니라 돈과 신용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켜주는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