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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 스콧 라이트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곧 자신이 암살당할 것을 아는 상황에서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찾았다. ‘자비의 눈’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사회 구조를 즉시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변화와 정의를 이끄는 ‘행동에 참여’하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격려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 3월 24일의 미사 도중에 암살당한 후에도 그는 오히려 더 큰 존재로써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정도로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며 세상일에 행동으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말이 중립이지, 기실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나서 도우는 모습은 아니었고 그런 식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의도는 선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만을 보자면 그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타입이었고 덕분에 집권층과 부유층들이 그를 자신들의 편으로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사제들의 계속적인 보고와 설득에도 그는 동조하지 않았다.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생각해 보니 그의 유년시절과 사제가 된 배경에서 어느 정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빈곤한 환경에서 지나다니며 보았던 사제의 모습에서 그는 어떤 동경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노동자들과 함께 부르짖는 외침의 믿음이 아니라 세상과는 격리된 듯한 곳에서 성스러운 이미지를 품고 있는 그런 사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훗날 그가 보수적인 사제로 행동하게 된 이유와도 연결되지 않나 싶다. 유년기에 느꼈던 성스러움에 대한 열망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었다는 문장에서 그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그렇다고 그가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부유한 자들의 편에 섰던 것은 아니었다. 메데인 주교회의의 핵심단어가 해방과 참여인데 그 방법은 대부분 과격하다. 따라서 그런 과격한 방법이 하나님의 뜻에 더 온전하게 가까운 방법인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영리나 챙기고 가난한 자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부유한 사람들을 통한 자선기금과 구호품은 그것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인 도움만 줄 뿐이고 그것을 주는 부자들에게는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수단일 뿐’이라는 그의 생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왜 갑자기 인식의 극적인 변화를 겪고 회개하게 되었을까. 책에서는 가까이에서 그를 모시던 사제들을 통해 다음 세 가지를 이유를 언급한다.

1. 7년간 엘살바도르 주교회의 총무로 일한 이후에 로메로 주교는 민중과 직접 만나는 활동에 복귀했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는 가장 사제다웠다.

2. 그의 신학적/사목적 생각과 현실을 보고 판단하는 관점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3. 트레스 카예스 대학살을 비롯해 그가 산티아고 데 마리아 주교로 일하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들은 그의 회개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회개와 믿음의 성장이라는 신앙의 역동성 덕분에 가톨릭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변화의 주체가 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교회에서도 원하는 활동이라고 보였던 예수회 신부 루틸리오 그란데가 암살되고 난 후에 그의 인식은 근원적인 변화가 확실히 앞당겨졌다. 로메로 대주교는 그란데 신부의 암살 후 장례미사에서 요한복음 15장 13절의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씀구절을 읽었다.

또 로메로 대주교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가 적힌 책 ‘현대의 복음 선교’ 일부를 인용해 미사에 차여한 군중에서 선포했다.

“‘교회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는이 세 가지를 전하기 위해 참여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감화, 사회적 교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동기’입니다.’”

‘회개’란 어떤 의미일까. 여기에는 많은 해석이 있다. 하지만 로메로 대주교님의 회개는 예수회 신부 케빈 버크가 해석한 회석의 의미인 ‘부활의 체험과 부활한 사람으로 살기’와 부합한다. 그가 회개하고 변하게 된 나이는 59세로, 이미 거의 모 든 것이 굳어져 있던 때라 근원적인 변화는 특히 더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그는 케빈 버크가 말한 회개의 의미대로 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의 믿음이 바뀐 것인가. 다만…

‘맞습니다. 저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로 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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