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상 정리, 물품 정리
정리란 곧 버리는 것과 연결된다. 버리는 것에서 시작하고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남는 건 내 기억 뿐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것들은 모두 기억을 돕기 위한 것들 뿐이다. 그게 무엇이든지간에, 지나간 것들에 대한 기억도, 앞으로에 대한 기억도.
2. 또?
언제든 떠나도 남아있는 것들이 이상하지 않도록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 가득이다. 이번 정리에도 또 한 가득이다.
부피로 보면 양은 줄었다. 거의 없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압축되고 또 압축된 것들마저 내보냈다. 처음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개운하다.
3. 머그컵
몇 개월마다 방을 구해 또 이동해야 했던 때에는 가진 모든 것이 커다란 트렁크 한 개에 들어갔다. 그렇게 맞추고 또 맞추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꼭 같이 다니던 머그컵이 하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트렁크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었지만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어서 가능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내 책상 위에 있다. 원래의 용도는 완전히 잊은채 새로운 용도로 떠날 날은 기다리고 있다.
버리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한 번 더, 딱 한 번만 더 같이 있어보기로 했다. 달라질 건 없는데 그래도, 그 징글맞은 ‘혹시나’ 때문에.
4. 새로운 것, 시작한 것.
시작한 것도 마치지 못했고 새로운 것은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다 끝났다. 깨끗이 정리되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내게는 너무 큰 변화였다. 역시나 ‘혹시나’이고 ‘헛된’ 것임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